1. 재미난청춘세상 이야기를 시작하며


"평범한 IT 기업가인 필자가 사회적기업가 정신을 깨달은 이후 사회적경제조직인 재미난청춘세상을 설립하고 운영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모쪼록 이 글을 통해 사회적경제를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 결과로써 여러분들이 앞으로 사회적경제기업을 조직하거나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다른 역할 또는 비전(사회혁신가, 지역 활동가, 프로보노, 비영리재단 소속 활동, 사회적경제 직무 분야별 컨설턴트 혹은 전문가, 사회적경제 연구자 등)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재미난청춘세상은 이제 시작입니다. 여러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그 과정에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잘 헤쳐 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이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프롤로그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하셨는데, 응용수학이 뭘 배우는 건가요? 전산(電算)을 많이 배우나요?”

미국 뉴욕주 북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 로체스터에서 대학을 졸업한 나는 마침 졸업하던 해인 1992년에 뉴욕 맨해튼에 진출해 있던 한 한국계 은행의 미주영업본부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다행히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면접을 보게 됐는데, 아마도 한국에서 온 면접관들에게는 응용수학이라는 전공이 생소했나 보다. 내가 다닌 대학이 로체스터공과대학(RIT, 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인데 이공계열 전공이 세분되어 있어 수학전공만 하더라도 응용수학, 전산수학, 통계수학으로 나뉘어 있었다. 물론 나중에 채용이 되고 난 뒤에 알게 됐지만, 면접관들은 응용수학이 뭘 배우는지에 관한 관심보다는 전산, 즉 컴퓨터를 얼마나 아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각종 업무에 컴퓨터 활용이 일상화되어 가면서 금융권에서도 점점 컴퓨터 사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비정상적인 전산 조작이나 오류로 인한 전산사고가 증가했고 그 규모도 점점 커졌다. 이로 인해 1990년대 초반부터 미국 금융감독국이 각 금융기관에 대한 회계감사만이 아니라 전산감사(EDP Audit)를 강화했고, 금융기관들은 이에 대응할 담당자가 필요해졌다. 전산감사는 은행지점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았고 전산시스템을 운영하는 본점을 대상으로 했는데, 미주영업본부가 미국에 진출한 이 은행의 지점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이제 막 시행한 업무라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한국계 은행은 더욱이나 전산감사가 무엇인지, 전산감사를 받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해 이를 담당할 직원 채용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난들 알겠는가? 대학에서 컴퓨터구조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그거와 전산감사가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선배도 없이 혼자서 미국 금융감독국의 감사자(Auditor)들을 맞아 어떻게 감사를 받으라는 말인가? 나는 은행이라고 해서 금융(finance)이나 투자(investment)업무를 배우려니 했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산감사 업무를 맡게 됐고 이렇게 나의 뉴욕 맨해튼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27살 한참 때였던 나는 잘 모르는 업무를 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촌 동네인 로체스터를 떠나 대도시 그것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 맨해튼에서 직장을 다니는 게 자랑스럽고 좋았다. 전산감사 업무도 처음 우려와는 달리 미국 금융감독국에서 전산감사를 나와서는 이것저것 지적하기보다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주로 가르쳐줬다. 아마도 미국 내에서도 시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단치는 것보다는 독려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던 것 같다.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줬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미주영업본부 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고 해서, 도쿄뱅크나 도이치뱅크와 같은 외국계 은행에 문의했지만, 그들도 나 몰라라 했다. 한국 같았으면 술 한잔하며 형님, 아우 하면 쉽게 해결됐을 텐데.

‘구하라, 얻으리라! 두드리라, 열리리라!’라고 했던가? 마침 맨해튼에 있는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대학원에 전산감사학(EDP Auditing)이라는 과정이 있어 뜻하지 않게 대학원을 다니게 됐다. 그리고 당시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며 서양미술을 전공하던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가족과 친구가 없는 이국땅에서 딸을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며 아내는 우울증이 생겼고, 결국 나는 아내와 상의하여 1996년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LG그룹과 미국의 EDS라는 회사가 합작으로 설립한 IT서비스 회사인 LG-EDS(현 LG CNS)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공공기관의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사업이 한창이었고, 이를 위해 삼성, LG, 현대 등 대형 IT서비스 회사들이 인력을 대거 채용하던 때라 어렵지 않게 채용이 되었다. 대학원에서 전산감사학을 전공하고 은행에서 전산감사 업무를 수행한 내 이력으로 인해 품질경영팀에 배치됐고, 이때 소프트웨어 품질이라는 업무를 배우게 됐다.

LG-EDS에서 소프트웨어 품질 업무를 수행할 때 앞으로 우리 삶에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질 텐데,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 품질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개발자들을 보면서 LG와 같은 대기업에서도 이러면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오죽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LG는 품질 업무를 수행하는 전담팀이 있으니 나 하나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므로 나는 중소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를 대상으로 소프트웨어 품질을 확보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컨설팅을 해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세웠다. 그리고는 컨설팅 사업을 배우기 위해 설립한 지 5년이 채 안 되는 투이컨설팅이라는 신생 컨설팅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몇몇 글로벌 컨설팅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는 했으나, 내가 추구했던 소프트웨어 품질 관련 컨설팅 업무가 아니라서 거절했다. 투이컨설팅의 대표님께 이메일을 보내 내가 하고 싶은 컨설팅 사업을 제안했고, 다행히 대표님께서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여주셔서 2000년 1월 입사를 하게 됐다.

하지만 계획이 있고 의욕이 있다고 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전산시스템 구축 사업을 하면 관련 컨설팅은 무상으로 따라온다고 여겼던 시절이라 소프트웨어 품질 확보를 위해 별도의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건 생각도 못 하던 때였다. 그래서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소프트웨어 품질을 왜 확보해야 하는지 그리고 소프트웨어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계속 알리는 것이었다. IT 일간지인 전자신문과 디지털타임스에 꾸준히 기고를 했고, IT비즈니스저널, 컴퓨터월드와 같은 IT 전문지에도 꾸준히 관련 내용을 연재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투이컨설팅의 기존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거의 무상으로 소프트웨어 품질 개선 컨설팅을 수행하고 결과를 정리해서 성공사례로 여러 세미나와 콘퍼런스에서 발표했다. 이러한 노력이 가상해서였을까? 약 1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소프트웨어 품질 개선 컨설팅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불모지였던 소프트웨어 품질 개선 컨설팅 사업을 수행하느라 초반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대신에 컨설팅 사업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빠르게 배울 수 있었고, 개척자로서의 보람도 컸다. 2004년 8월에 지금의 회사인 TQMS를 창업했다. 투이컨설팅에서의 4년여 경험을 통해 컨설팅 사업을 수행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으나, 당시만 해도 사업과 경영이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사업을 잘해서 돈을 잘 벌어 직원들에게 연봉을 많이 주고, 대기업 못지않은 복리후생을 제공하면 회사가 잘 굴러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월을 거치면서 나는 사업이라는 것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고 창의력을 펼쳐 나가는 것임을 깨닫게 됐다.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예술처럼 개인의 재능을 표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업의 핵심은 변화이기 때문이다. 사업과 관련이 있는 것 중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시장은 달라지고 제품과 서비스는 발전하며, 어제의 경쟁사가 오늘은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경쟁사가 된다. 직원들은 들어 왔다가 나가고, 심지어 경쟁자가 되기도 한다. 기업은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몇 안 되는 사회기관이다. 물론 많은 기업이 탐욕과 공격성에 얼룩진 나머지 과정이야 어찌 됐건 결과로서의 이익 추구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진정한 기업은 소수의 행운아가 아닌 다수를 위해 사회를 간접적으로 발전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업은 태생적으로 선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영하기 나름이다. 기업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몰고 갈지, 파괴적인 방향으로 몰고 갈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인간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깨닫고 일을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거나, 직장을 통해 변화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이것이 내가 비영리조직인 재미난청춘세상을 설립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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