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청춘(靑春)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물에서 오는 신선한 정신, 유약함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를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이십의 청년보다 육십이 된 사람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기력이 땅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마음이 시들어 버리는 것이다.

육십 세든 십육 세든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놀라움에 끌리는 마음, 젖먹이 아이와 같은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이다.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남에게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움, 희망, 용기, 영원의 세계에서 오는 힘,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그대는 젊음을 유지할 것이다.

영감이 끊어져 정신이 냉소라는 눈에 파묻히고, 비탄이라는 얼음에 갇힌 사람은 비록 나이가 이십 세라 할지라도 이미 늙은이와 다름없다. 그러나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일 것이다.

사무엘 울만(1840~1924)이 78세에 쓴 시라고 한다. 시인은 청춘을 특정한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미지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과 삶에서 환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이라 부를 수 있다. 중장년 퇴직자이든 청년 구직자이든 보호 종료 청소년이든 그들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강인한 의지와 불타는 열정을 갖고 있다면 그들은 모두 청춘이다.

여러 연령층의 청춘들이 재미나게 어우러져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곳이라는 의미로 “재미난청춘세상”이라는 이름을 붙여 봤다. 재미난청춘세상은 “미생(未生)이 상생(相生)하여 완생(完生)이 되는 세상”이다. 사회적경제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 퇴직자에게는 새로운 직업의 기회를 청년 구직자와 보호 종료 청소년에게는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 기업 창업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창업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이미 운영 중인 유사 프로그램을 조사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같은 정부 기관과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와 같이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각 프로그램의 모집 안내를 보면 개략적으로 어떤 과정을 가르치는지를 알 수는 있으나, 과정별 상세내용까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사회적경제 분야의 창업 과정과 일반 창업 과정 하나씩을 골라 직접 참여해 봤다. 당시 운영 중이었던 창업 과정들의 평균 교육 기간과 개최 횟수는 5주에 10회 정도이며 총시간은 20에서 30시간이었다. 과정 운영 기간이 짧은 탓에 교육 내용은 주로 기본적인 개념을 다뤘고, 수료생을 몇 명 배출하느냐에 관심을 가진 듯 보였다. 심지어 일반 창업 과정은 예비창업자나 초기 창업자를 대상으로 정부의 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표준사업계획서 작성에 초점을 맞춘 수업이었다. 창업자들을 위한 세무, 회계, 특허, 투자 등과 관련한 내용도 일부 다뤘는데, 기업가정신과 같은 기본 철학을 다루는 과정은 없었다. 물론 창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예산과 인력 그리고 과정 참가자들의 요구 등 여러 제약 요소가 있겠으나, 과연 이런 식의 요령 위주로 배워서 과연 올바른 기업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교육 내용과는 별개로 두 개의 각기 다른 과정이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과정 참가자 대부분이 퇴직 후 재취업이나 창업을 준비 중인 사람들로 안쓰러운 사연도 많았다. 어떤 사람은 그동안 마음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의기가 소침해 있고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요즘은 겨우 쉰 살쯤에 회사를 떠나게 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쉰 살은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두렵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젊은 나이다. 퇴직하고 한 두 달은 좋다. 그간 고된 일에 시달리던 몸이 자유로워졌다. 아침에 출근을 위해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지옥철에서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일이 굼뜨다고 잔소리하는 직장 상사도 없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이내 할 일 없는 무료함 속으로 빠져들면서 당황한다. 집에서 눈치도 보이기 시작한다. 뭔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그동안 일상에 지쳐 인생 2막을 따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하지만 초조하고 안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격전의 인생 전반을 끝내고 새로운 인생 후반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를 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휴식과 준비의 시기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최상이다. 그러나 어찌어찌해 인생 후반기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못 하고 덜컥 퇴직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에 휴식이 있듯 우리에게는 적어도 몇 년 정도는 잘 준비할 시간이 있다. 이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인생 2막은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인생의 전반부가 그저 먹고살고 아이들을 건사하기 위한 경제적 생존이었다면, 후반부에서는 삶의 진수를 즐기는 문화적 각성이 따라주어야 나이 들었을 때 너그러움과 관용이 커지게 된다. 인생 후반부에서조차 먹고살기 위해 전전긍긍해야 한다면 삶을 즐기고 찬미할 시간이 언제 있겠는가? 이때쯤이면 일과 취미가 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유배 보낸 수도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구도였다. 엎드려 기도하는 것만이 수련이 아니라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집안 곳곳을 손질하는 모든 것이 신께 나아가는 방법이었다. 나는 인생 후반기의 직업관은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월에 인생을 더할 줄 아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 이것이 사회적경제 기업 창업 프로그램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인생의 9할은 이미 존재하는 “기존”이고 나머지 1할의 9할은 이미 이뤄진 “기성”이다. 따라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1할의 1할인 “미성”이다. 우리는 선발주자가 하는 사업을 벤치마킹한다. 벤치마킹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해 선발주자의 경영 방식을 자세히 분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핵심은 선발주자가 하는 것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들에게서 고객이 얻지 못하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다. 즉 벤치마킹은 선발주자가 해당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고 그대로 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길들여진 생각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어 새롭게 연결해 주는 것이다.

두 번의 창업 과정 참여를 통해 내가 만들어야 할 창업 프로그램은 단순 창업 지원이 아닌 사회적경제의 본질과 사회적경제 기업가로서 갖춰야 할 정신을 일깨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사회적경제 기업을 창업하는 방법에만 초점을 맞추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가 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 이러한 기본 철학을 갖춘 후에는 창업 준비부터 창업 시까지의 전 과정을 밀착 지원하고 창업 이후 성장까지도 지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경제기업 창업 과정 개발을 위한 일정 계획. 2019년


지금까지 조사하고 고민했던 내용들을 정리하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스왓(SWOT)분석을 통해 나의 강약점과 시장의 기회와 위협요인을 정리하고, 기존 프로그램들과의 차별화전략을 마련했다. 시장에 제공할 주요 서비스를 정의하고 2019년 말까지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한 후, 시범 적용을 거쳐 2020년 3월 초에 과정을 개설하는 일정 계획을 세웠다.

과정은 크게 두 축으로 아이스브레이킹 및 팀 빌딩을 위한 기본과정과 사회적경제의 본질과 기업가정신을 일깨우는 실전과정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기본과정은 사회적경제에 대한 개념과 사회적경제 조직에 대한 이해 및 사례 그리고 사회적경제 조직 리더와의 대화와 사업모델 개발 및 사업계획서 작성 등으로 주 2회, 8주간 진행하도록 편성했다.


사회적경제기업 창업 1기 기본과정 커리큘럼. 2020년


과정 초반에는 과정 참가자들 서로 친해지고 몸속의 학습 세포도 일깨우기 위해 자주 만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강의는 나와 친분이 있는 분들께 부탁했고, 모두 기꺼이 맡아 주셨다.

문제는 실전과정이었다. 시중의 여타 과정처럼 사회적경제 기업을 창업하는 방법에만 초점을 맞추는 과정이 되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경제 분야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던 나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있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올린 “사회적경제 과정 구성 및 운영안”이라는 글을 보게 됐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해 사회적경제의 본질을 가르치는 교육이 돼야 한다며, 본인이 구상한 교육과정 커리큘럼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이 글을 올린 분이 예전에 “사회적경제학”이라는 책 출판 기념으로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특강을 가졌던 강남대학교의 최중석 교수님이었다. 나도 그때 특강에 참석해서 인사를 나눴던 터라 바로 연락을 드리고 만나, 내가 하려는 재미난청춘세상의 사회적경제기업 창업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과정 운영에 관해 협의했다. 마침 최 교수님께서도 과정은 개발해 뒀는데, 이 과정을 운영하겠다는 기관이 없던 차라 우리 둘은 쉽게 의기투합했다.

다만 우려가 됐던 것은 최 교수님이 제안한 실전과정이 총 16주로 구성되어 있어, 이미 8주 기간으로 편성되어 있는 기본과정까지 합치면 총 24주의 교육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교육받기 위해 거의 반년의 기간이 필요한데, 과연 이 긴 기간 동안 온전히 교육받을 수 있는 참가자가 얼마나 될까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실전과정은 이론을 담당하는 주임멘토(최중석 교수)와 현장경험을 보유한 전문멘토가 함께하는 구조를 가져가야 한다고 해서 강사료도 처음 계획과는 달리 2배가 필요했다.


사회적경제기업 창업 1기 실전과정 커리큘럼. 2020년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다. 결정된 사항을 추진하는 데 있어 매우 계획적이다. 그런데 의외로 의사결정을 하기까지는 그다지 계획적이거나 철두철미하지 않다. 직관적으로 마음이 동하면 하기로 한다. 일단 저질러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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