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라이프 로드맵 2020

사십춘기를 심하게 앓던 2012년과 2013년 2년간은 내 삶에 있어 인문학책을 제일 많이 읽었던 때이다. 고전철학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색했고,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문학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려주는 역사는 내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했다. 이러한 배움과 이해는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했다. 

몸살감기가 심해 약국에 약을 사러 가기 전까지는 우리 동네에 약국이 그렇게 많았는지 몰랐던 것처럼 그동안 은연중에 흘려보냈던 우리 주변의 비양심적인 행위들이 크게 드러나 다가왔다. 뉴스만 틀면 연일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기득권층의 도를 넘는 비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언가 힘을 보태고 싶었으나, 무엇을 하는 게 좋을지 방향을 잡지는 못했다.

2014년 4월 16일은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은,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이다. 2014년 4월 15일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 제주로 향하던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해 304명의 사망 및 실종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다. 이 사고로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생존했고, 304명의 사망 및 실종자가 발생했다. 특히 세월호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 325명이 탑승해,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세월호는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급격한 변침(變針, 선박 진행 방향을 변경)으로 추정되는 원인으로 인해 좌현부터 침몰이 시작됐다. 그러나 침몰 중에도 선내에서는 “가만히 있으라!”라는 방송만이 반복됐고, 구조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엉뚱한 교신으로 인한 초기 대응 시간 지연과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함 그리고 해경의 소극적 구조와 정부의 뒷북 대처 등 총체적 부실로 최악의 인재(人災)로 이어졌다. 어른들의 욕심과 비양심적인 행위가 많은 어린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공교롭게도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이 2021년 4월 16일로 사고가 난 지 만 7년이 되는 날이다. 그동안 검찰을 비롯해 여러 조사 주체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에 나섰음에도 여전히 참사 당일 구조 과정 등의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2014년은 내 삶에 있어 새로운 표지가 세워진 해이다. 지난 반백 년의 세월(歲月)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반백 년의 세월(歲月)을 바라보며, 의미 있는 삶을 그려보던 내게 세월(世越)호 사고는 내 인생관에 영향을 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던 세상을 초월하여 새로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갖도록 해주었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비양심적인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언제까지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마하트마 간디가 “세상의 변화를 원하면 스스로 그 변화의 주체가 돼라.”라고 말했듯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와 같은 기성세대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부조리와 문제들은 이미 그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우리가 바로잡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가치관이 굳어진 기성세대를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청소년들이 올바르게 커 줘야 하는데, 가정과 사회적 환경이 어려워 올바로 커나가는 것이 힘든 청소년들이 많다.

여성가족부는 2015년 말 기준으로 학교 밖 청소년을 약 39만 명으로 추산했는데, 이 1%의 학교 밖 청소년이 전체 청소년 범죄의 40%를 저지른다고 한다. 학교 밖 청소년의 절반 이상은 학교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고 있고 자기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과 검정고시, 건강검진, 직업훈련 등의 지원을 원하고 있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중앙정부 산하단체나 지방자치단체별로 센터를 운영하거나 일부 뜻있는 분들이 사비를 들여 대안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청소년 지원시설보다 민간이 운영하는 대안교육 시설이 학업을 중단했던 청소년의 향후 계획에 대한 성취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비용 문제로 인해 대안학교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을 수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나는 비록 미약할지언정 힘을 보태자는 취지로 가정과 사회적 환경이 어려워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을 위한 무료 직업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실상도 모르면서 ‘어떻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몰랐기에 또 한 번 용감했다.


라이프 로드맵 2020. 2014년 12월


2014년이 저물어 가는 12월 어느 날, 나는 가족에게 취약계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직업학교를 설립하겠다는 나의 “라이프 로드맵 2020”을 들려줬다. 모두 놀라는 듯했으나 실제 ‘뭘 하겠냐?’ 싶었는지 큰 반대는 없었다. 2020년에 청소년을 위한 무료 직업훈련학교를 개교하겠다는 목표는 뚜렷한 계획하에 설정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이라는 연도가 주는 느낌이 좋았고, 준비하는데 그래도 5년 정도는 필요하겠다는 다소 비 계획적인 감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던 딸과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뒷바라지해야 하니 최소 5년간은 사업을 열심히 하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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