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회복지대학원에 간 공학박사

나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북돋우기 위해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나의 새로운 꿈과 계획을 나눴다. 어려운 처지의 청소년들을 위해 무료 청소년직업학교를 설립하겠다는 나의 이야기에 대다수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느냐?”, “대단하다!”라며 나중에 자기들도 어떤 형태로든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내 얘기가 다소 황당하게 들렸거나, 정말 말처럼 내가 실행하는지 그때 가서 보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무관심한 반응 속에 시간만 흘러갔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문제를 뉴스에서나 접했던 나였던지라 무엇을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를 몰랐다. 평생을 IT 분야에서 일하면서 사회활동 관련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했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도 마땅히 없었다.

그러던 2016년 봄의 어느 날, 내 앞으로 발송된 이메일을 무료하게 뒤적이다가 눈길을 사로잡는 이메일이 하나 있었다. 숭실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으로부터 내게 날아든 대학원생 모집 안내메일이었다. 숭실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소프트웨어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자연스럽게 동문이 된 탓에 이전에도 학교로부터 여러 이메일을 받기는 했다. 주로 동문 활동과 관련한 행사 안내라 평소에는 거의 읽지 않았는데, 그날은 관심이 갔다. 그리고 그해 가을학기에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했다. 사회복지에 대한 학습과 사회복지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님들과 대학원 동기들을 통해 나의 계획을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구체화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내 나이 쉰한 살 때였다.

사회복지대학원에서의 배움은 흥미로웠다. “사회복지개론”, “사회복지행정론”, “사회복지실천론” 등과 같이 사회복지와 관련한 전반적인 교과과정만이 아니라 “사회복지 윤리와 철학”,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청소년 심리 및 상담” 등 내가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내용이었다. 수업 진행 또한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책을 읽고 독후평 쓰기, 주제별 모둠활동 및 발표, 사회복지 현장 방문 및 인터뷰, 해결중심접근에 기반을 둔 면접과 의사소통 방법을 사용하여 자녀와 대화하고 느낀 점 쓰기, 자신에 대한 이해 보고서 쓰기와 같이 사실에 근거한 답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와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성찰해 보는 방식이었다. 이공계열에서 주로 혼자 공부하는 방식에 익숙했던 내게는 다소 생소했지만, 이러한 공부 방식이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해줬다.

대학원 첫 학기에 사회복지 윤리와 철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는데, 담당 교수님께서 내주셨던 과제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 평소에 잘 모르거나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들, 예를 들자면 성매매 종사자, 동성애자, 빈곤자, 학대자, 범죄자, 사이비 종교인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느낀 점과 실천방안을 정리해서 제출하는 과제였다. 나는 당시 나와 한 조였던 조원의 소개로 유흥업소에서 호스티스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한 여성을 인터뷰할 수 있었다.

H양은 전라도 목포 출신이다. H양이 4살 때, 엄마가 지금의 아빠와 재혼했다. 엄마가 분식집을 하며 생계를 꾸려 갔고 새 아빠는 그저 엄마의 일을 거들 뿐이었다. 새 아빠는 평소에는 온순한 편이었는데,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H양은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다지 행복했던 기억이 없다. 궁색한 살림살이에 하루가 멀다고 술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아빠 그리고 결코 가까워질 수 없었던 배다른 오빠와 언니. 그런 H양에게 그래도 힘이 되어 준 건 지금도 연락하고 가깝게 지내는 동네 친구들이었다.

H양은 지방의 한 전문대학에서 웹 디자인을 공부하고 직장을 찾아 서울로 왔다. 그러나 직장을 구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H양처럼 지방의 전문대 출신은 더욱 어려웠다. 돈만 까먹다가 안 되겠다 싶어 고향 친구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조그만 광고기획사를 창업했다. 전단지류를 디자인하고 제작해 주는 회사인데, 처음에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생활비 정도는 벌었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웹 디자인하는 중소기업에 취직이 됐다. 웹 디자인은 원체 경쟁이 치열한 분야라 일 년에도 회사 몇 개씩 문을 닫곤 한다. H양이 취직한 회사는 당장 문 닫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업이 썩 잘되는 편도 아니어서 월급이 매우 적었다. 당시에 세금 제하고 1백만 원 조금 넘게 받았는데, 그 돈으로 집세 내고 엄마께 용돈 보내 드리고 나면 생활비도 빠듯했다.

H양에게는 마음의 짐이 있었는데, 그건 고향 친구들에게 빌린 돈을 빨리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괜찮다고 천천히 갚으라고 하지만, 친구들 처지를 뻔히 알면서 마냥 늦출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생활비도 없는 상황에 어떻게 갚겠는가? 그러던 차에 H양이랑 같은 회사에 다니는 1년 어린 후배가 ‘혹’하는 제안을 해왔다. “언니, 내가 요즘 밤에 알바로 바(술집)에서 일하는데 수입이 괜찮아. 일주일에 2, 3일만 출근해도 최소 50만 원은 벌 수 있어. 언니도 소개해 줄까?”

술집에서 일하는 건 누구나 그렇듯이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다. “술집 여자”, “나가요 언니”와 같은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H양도 술집에서 일한다는 걸 그때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H양에게 유흥업소를 소개해 주겠다는 후배는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집안 형편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여느 평범한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애였다. 그런 후배가 본인도 지금 일하고 있다며 소개해 주는 것이고 한 달 열심히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1, 2주 만에 벌 수 있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H양이 소개받은 곳은 제법 고급스러운 유흥업소로 4명 또는 6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어, 비즈니스 접대 자리가 많았다. H양은 처음 일을 시작하며 2차(성매매)는 안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 오는 손님들 대다수가 2차를 안 하는 사람은 테이블에 앉히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종업원들은 테이블에 들어가고 2차 나가고 하면서 받게 되는 팁이 주 수입으로 그 외에 업소로부터 받는 돈은 없었다. H양은 낮에 회사에서 일하며 밤에도 주 3일을 업소에 출근했지만, 2차를 나가지 않다 보니 테이블을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정작 버는 돈은 없이 미용실 들리고 출퇴근 택시 타고 하느라 돈만 쓰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H양은 2차를 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술집에서 일하는 거, 2차 안 나간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돈을 벌어 하루라도 빨리 이 생활을 청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H양은 많은 손님을 받았다. 의사, 변호사, 판검사, 교수, 사업가, 정치인, 종교인, 기자, 심지어는 연예인까지 소위 대한민국의 지식인과 리더라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대다수가 결혼하여 자식까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H양은 결혼을 안 하기로 결심했다. 세상에 믿을 남자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길 힘들게 일하기 싫으니 쉽게 돈 벌 수 있는 유흥업소에서 일한다고 한다. 물론 멀쩡한 여대생들이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있다. 짧은 시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명품 가방을 사고 해외여행을 간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집안 환경이 어려워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집 나와 떠돌다가 취직도 못 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면 사람 취급을 못 받는다. 술 취한 남자들이 노리개로 생각한다. 그나마 가게에서 술을 마실 때는 지배인도 있고 마담, 웨이터들도 있으므로 “진상” 손님이 있어도 어느 정도 보호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2차를 나가면 단 둘뿐이다. 술 취한 이 남자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벌고 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마음의 상처가 많다. 주로 밤에 일하다 보니 일상적인 생활방식이 달라 만나는 사람들도 손님이나 업소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누구든 조금만 잘해 주면 쉽게 마음을 열고 그러다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젊은 날 잠깐의 잘못된 결정과 행동이 남은 삶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다.

H양은 유흥업소에서 약 3년 정도 일하고, 그때 번 돈으로 가죽공예를 배워 지금은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가죽공예가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거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런 만큼의 대가를 받기가 아직은 어렵다. 하지만 공방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하면서 생활은 유지되고 있고 간간이 온라인을 통해 판매도 이뤄지고 있어 현재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H양은 본인이 만드는 제품을 런칭하여 중국과 일본 시장에 진출할 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지난여름에 일본과 중국에 가서 시장조사를 하고 왔다.

대다수 사람은 유흥업소 접대부나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세상에 수많은 직업이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은데 자신도 떳떳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좋지 않은 일을 왜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게 그 누군가에게는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절박함이 사람마다 달라서 어떤 일을 선택하는 기준도 제각각 다르고, 헤쳐 나가는 방법 또한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계기로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너희는 봄을 사지만 우리는 겨울을 판다”라는 책도 함께 읽었다. 부산의 대표적 집창촌인 이른바 “완월동”이나 티켓다방 등에서 한때 성매매업을 직업적으로 했던 여성들 10명이 쓴 수기와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성매매 업소를 탈출한 이들은 부산의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인 “살림”이 운영하는 쉼터에 거주하면서 4개월간 16회에 걸친 글쓰기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썼다. 10명의 성매매 피해 여성들 모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의 이혼, 가난, 아버지와 오빠의 폭력, 왕따, 그리고 그로 인한 가출, 배고픔, 불안, 외로움, 무서움의 절박함 속에서 달콤하게 다가오는 유혹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가족이라 여겼던 그들(업주)은 딸 같은 아이들을 짐승 취급했고, 오직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 세계에서는 성매매가 불법이라는 것이 소용이 없었다. 업소 고객 중에는 경찰, 판사, 변호사, 정치인도 있었으니 말이다. 어떤 아이는 아빠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일부러 단속에 걸리기를 바라기도 했다. 단속에 걸리면 경찰이 부모에게 연락하고, 자신을 찾아오는 부모의 손에 끌려 집으로 가면 그것이 관심이라 여겼다.

또한 업주는 업소의 규율과 서열을 만들어 온갖 방법으로 그들에게 빚을 안기고 폭력을 가했다. 그 안에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법이고 전부인 줄 알았다. 혼자의 힘으로는 그곳에서 발을 빼기 쉽지 않은 상태였다. 성매매를 오랜 기간 경험한 여성 중에는 자신이 10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 기간에는 ‘나는 내가 아니다’라고 의식적으로 세뇌를 하기도 한다. 내가 아니어야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내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매매 여성 중에는 돈을 모아서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갖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여인들도 있을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10명의 여성은 그 시간을 겪어내고 살아낸 힘으로 지금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상담을 하고, 글을 쓰며 탈성매매를 위해 애쓰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현실적인 재취업만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일은 그만둘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불법 원인으로 인한 채권·채무는 무효지만 이것이 성매매와 관련 있는 돈(선불금)임을 성매매 여성들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업주들은 수년이 지나서 잊을 만하면 소송을 걸고, 집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있지만, 성매매 현장은 초 법적인 위치에 있다. 성매매 현장에서 벗어나려 해도 업주로부터의 후환이 두려워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성매매 알선업주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전국시민연대나 뜻을 같이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모아 주장하고 촉구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다른 관점에서의 문제는 성매매를 자의적으로 하는 경우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와 성적 자기 결정권에 있어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어떻게 존중해 주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한 인간으로서의 생각은 존중하되, 성매매 방지 특별법 내용과 도의적 가치관을 주지시켜 주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성매매 여성들이 업소를 빠져나오려면 계기가 있어야 한다. “성매매피해여성지원센터” 같은 기관에서는 성매매 피해 여성을 상담하고 법률 및 의료지원 등을 하고 있다. 탈성매매 여성들의 실제 경험과 생각을 적은 책자를 배포하여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기도 한다. 또한 탈성매매 여성들이 거주할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하여 치유와 직업자활 등을 돕는다. 센터직원들은 성매매 여성들을 돕는 실천 기술로 판단이나 정죄가 아닌 온정적인 개입과 개인 존중, 전문적인 법률 및 의료지원을 꼽는다. 그리고 많은 탈성매매 여성들은 이러한 지원과 도움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결국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비록 대학원 과제로 했던 것이기는 하나, 유흥업소 접대부나 성매매 종사자들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탈성매매 여성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기에 앞서, 성매매로 인해 야기되는 여러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을 매수하는 남성들의 의식과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관련된 조사나 연구에 따르면, 성매매가 사라지지 않는 원인 중의 하나는 수요자인 남성들이 가진 성에 대한 의식 구조 때문이다. 남성들이 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정서적 동경이나 성적 집착을 가지는 현상인, 일명 롤리타 콤플렉스(롤리타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로, 1955년 프랑스에서 발간되어 판매가 금지되었으나, 1958년 미국에서 다시 발간되어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소설은 주인공 험버트가 12살짜리 소녀인 의붓딸 롤리타에게 이끌려 아내를 사고로 죽게 하고 롤리타를 차지하지만 결국 자신이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에서 묘사된 어린 소녀에 대한 중년 남자의 성적 집착 혹은 성도착을 “롤리타 신드롬” 또는 “롤리타 콤플렉스”라고 한다. 현대에서 롤리타 신드롬은 세기말 현상 중의 하나로,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 여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대가로 중년 남자와 사귄다는 “원조(援助)교제”도 일종의 롤리타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로 인해 성매매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남성들은 나이 어린 여성을 소유하고 성적 대상화시킴으로써,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 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렇다면, “만약 당신의 여동생이, 만약 당신의 딸이 다른 남자의 성 노리개가 된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를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사회복지윤리와 철학” 과목 교수님과 급우들. 2016년


대학원 2학기 때, 사회복지실천론을 가르치신 교수님께서는 “학습일지”를 작성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강의나 교재의 주요 내용과 모둠활동의 내용 및 결과를 정리한 학습 내용과 내 생각과 경험 또는 의견 그리고 실천원칙을 정리한 학습 교훈이 담긴 학습일지이다.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 본다는 점에서 좋겠다는 생각에 수업마다 학습일지를 작성했다. 물론 학습일지를 작성하는 데 노력이 많이 들었다. 수업 당 최소 한 시간 이상은 학습일지를 작성하는 데 시간을 들여야 했다.

하지만 학습일지를 작성하려다 보니 수업에 더 집중해야 했고, 수업 후 정리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의 학습이 이뤄졌다. 특히 그날 학습한 내용과 관련한 내 생각이나 경험 또는 의견을 작성하는 “학습 교훈(Lessons Learned)”은 학습일지의 백미(白眉)였다. 나의 철학이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과정을 함께 수강했던 다른 급우들도 학습일지를 작성해서 공유했다면 그 내용을 읽는 것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놓친 부분을 정리한 급우도 있었을 것이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거나 경험하지 못한 내용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 외에 학습일지를 작성한 급우는 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왕지사 하는 거 졸업 때까지 내가 수강하는 모든 과목에 대한 학습일지를 작성했다.

사회복지대학원에서의 공부는 교과과정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건 아니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이미 일하고 있는 동기들과 교수님들과의 교류 자체가 하나의 공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었고, 그들과 함께 있으면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들로부터 오는 선한 기운이 나를 감싸 안아 머지않아 나 역시 그들처럼 타인을 위해 봉사할 때 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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